남해충렬사

남해충렬사

  • 지정번호 : 사적 제233호
  • 지정일자 : 1973. 6.11
  • 위치 : 설천면 노량마을
  • 사우 : 맛배기와 기둥 6개 / 높이 2.9m / 가로 3.69m / 세2.76m / 면적10.18제곱미터
  • 부속물 : 모정비 / 비각 / 충무공비 / 충민공비 / 청해루 / 한글비

"이 충무공을 3개월간 모셨던 사당"

충렬사는 노량해전의 치열했던 전투가 떠오르고, 노량 앞바다의 푸른 물결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노량마을 해안 언덕빼기 울창한 숲 속에 자리잡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거룩한 뜻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이 충무공은 관음포 노량해전에서 순국하고 아산으로 운구 전에 3개월간 이곳에 안치되었다.

충무공의 순국을 슬프게 느끼던 남해사람 김여빈과 고승후가 이 충무공이 순국한지 35년이 지난 1633년에 초가집 한 칸을 사당으로 건립하고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게 되자 남해현령 이정건이 사당 앞에 충민공비를 세웠다. 이순신장군이 순국한지 45년 후인 1643년에 이순신 장군에게 충무공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1658년. 어사 민정중이 통제사 정익에게 사당을 신축하도록 해서 모습을 갖추었다. 현재 사당 앞에 있는 "유명조선국삼도통제사 증시충무이공 묘비"는 1660년에 숭록대부 의정부 우찬성 송시열이 글을 짓고 정헌대부 의정부 좌참찬 송준길이 쓴 것이다. 현종 때에는 임금이 직접 쓴 충렬사 현판이 하사 되었다. 이렇게 조정에서는 이곳 남해 충렬사를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으로 인정하였고

세월은 흘러 순국 195년이 지난 후인 1793년에 이곳에 충무공비를 세우고 충민공비를 땅속에 묻었다. 충무공은 이 해에 의정부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남해 충렬사는 그 뒤에도 계속 성역화사업이 추진되었으나 고종8년인 1871년에 향사, 서원 철폐령에 따라 사당은 허물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1922년에 윤기섭과 고준홍이 자기집 재산으로 사우3칸을 새로 지어 제사를 지내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25년. 충무공의 11대손이 되는 이민봉이 청해루 누각을 지었고 1949년에 남해군민과 경남 초등학생 성금으로 한글비를 청해루 앞에 세웠는데 이글은 정인보가 짓고 김충현이 썼다. 1965년에 박정희대통령이 "충렬사"와 '나라를 위해 싸운 공적이 극히 큰 것'이라는 뜻의 "보천욕일"이라는 현판를 달았다.

남해군은 주위에 있는 민가를 매입하여 연차적으로 남해 충렬사 주변을 성역화하기 위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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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9-07-02 09:5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