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현마을

작성일
2009-07-30
이름
관리자
조회 :
3473
  • (15)문현.JPG

문현마을 전경

문현마을 전경

시부모 봉양 극진 정씨 효열비 마을 자부심
배산임수(背山臨水) 명당 터

봉곡다리를 건너 농로를 따라 오르면 금산 영봉에서 강진만으로 뻗어 내려간 천황산 줄기인 문고개 새재가 차를 막아 선다. 고려말 백이정 정승 때 시문에 있던 홍살문으로 통하던 문이 있었다 해서 '문고개'라 부르는 곳이다. 옛날 이곳은 성벽이었고 드나드는 문이 있어 마을 옛이름을 '문곡' 또는 '문고개'로 불렀으나 일제시대때 '문현(門峴)'으로 고쳤다고 한다.
 
이동 닷새장이 열리면 남새거리 이고 지고 넘나 들었을 문곡새재를 넘어서자 시야가 훤히 트이며 전신주들을 따라 넓은 길이 열려있다. 큰 길은 정겨운 고샅길들을 가지쳐 놓았고 다시 고샅길이 집들을 어루러 놓은 마을 하나. 배산임수(背山臨水)라 했던가. 마을 뒤로는 야트막한 산을 두르고 마을 앞 작은 내가 흐르는, 강진 바다를 내려다 보며 아늑히 터를 잡은 46호 86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문현마을이다. 길가에 서 있는 사당같은 돌집 하나. 자식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면 이 마을 주민들이 자식들을 나무라며 하는 말이 있다. "정씨 할머니 흉보겄다" 일제의 식민지였던 1920년대 정재엽 할머니는 광두마을에서 이곳 박씨 문중으로 시집을 왔다. 어느 집이나 입에 풀칠하기 어렵던 시절이었지만 시댁은 더 찢어지게 가난했고 신혼의 단꿈이 무르 익기도 전 가난을 견디지 못한 남편은 일본으로 떠나버렸다. 정씨는 날품을 팔고 20여년 동안 이웃집을 돌며 동냥을 얻어다 시부모를 봉양했다. 이집 저집 돌며 때꺼리를 얻다 보면 밥때를 넘기게 되고 그럴 때면 시부모는 때 늦다고 호통을 내질렀지만 정 할머니는 싫은 내색 한번없이 부모 모시기에 정성을 다했다. 남해 향교는 갸륵한 정 할머니의 효심을 기려 상을 내리고 효열비를 세워 마을의 귀감으로 삼도록 했다. 

[주요지명 및 유래]

문고개 : 들마을 남쪽에 있는 고개, 문현의 다른 이름
 

●마을회관(055-86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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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30 11:27: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