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마을

작성일
2009-07-30
이름
관리자
조회 :
5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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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마을 전경

금천마을 전경

투망 한번에 은어 10마리 잡든 곳
은어 묵장어 노닐던 '꽃내'를 살리자

가구수 40호, 주민수 120명, 반농반어로 호망(주복), 유자망, 통발 등을 하며 강씨, 김씨 등이 얽혀 살아가는 삼동면 금천마을. 금천마을을 가려면 군내에서 가장 이름이 예쁘다는 삼동면 꽃내마을에서 내려 비단같이 아름다운 금천을 건너야 한다. 금천(金川), 주민들은 "예전에 이 개울은 은어, 숭어, 피리, 묵장어, 참게 따위가 무지하게 많던 곳"이라 며 "다리 밑에서 투망을 던지면 한번에 은어가 10여마리씩 잡혀 즉석에서 회를 치고 매운탕을 끓여 밤이 어슥하도록 소주잔을 기울이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애수로 남아있는 아련한 그 시절의 추억은 주민들의 깊은 주름살 속에 숨어 있는 전설일 뿐이다. 매끈하게 직강 공사를 해 물 흐름을 바꾸어 버린 금천 둑, 거기다 내산저수지가 들어서고 부터 물길이 끊겨 냇물이 줄어들며 물고기들이 떠나 버렸다. 더구나 논밭에 들이 붓는 농약으로 내가 몸살을 앓자 바다에까지 영향을 미쳐 톳나물, 주칭이(해조류)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금천마을의 또다른 이름은 노루목 또는 노리목이다. 주민들은 지형이 노루목처럼 생겼다 하여 '노루목', 적을 노리던 곳이라 하여 '노리목'이라 전해 온다는데 인근 지명들의 유래를 유추해보면 노리목이 맞을 듯도 하다.

재주좋네 재주좋네 남해사람 재주좋네
하룻밤에 통문 돌아 목 앞에다 진을 치고 만인간을 모아놓고
김장방이 모은 군사 한윤서가 호걸일세
영포영포 김영포야 많은 군사 다어쩌고 임술군만 낮잠자네.

임진왜란으로 왜병이 침입해오자 마을 주민 모두가 전투에 참가했다는 이 노래는 지난 89년 사망한 조금악 할머니에 의해 전해오던 구전민요이다. 이순신장군에게 연전연패하던 왜군들은 전라도 쪽에서 참패한 후 광양만을 거쳐 노량해협에 이르러 두 쪽으로 나뉘어 도주한다. 주력부대는 관음포만으로 쫓겨 들어와 육지로 몰려 몰살 당하고, 다른 한편은 노량선소 앞바다에서 많은 손실을 입고 돈섬(삼동면 전도) 포구안으로 숨어 들었다. 이 사실을 탐지한 아군과 민병대는 적이 피곤에 지쳐 곯아 터진 야음에 기습하여 몰살 시켰다. 이런 연유로 인근지명이 군량미와 정부미를 집결하던 양곡장인 둔촌마을, 아군이 매복해 있던 복병, 왜군이 전멸한 몰상개, 왜군 시체가 묻힌 백토산, 아군이 대기한 대기몬당, 병기를 옮기던 통로인 병기질, 가마솥을 걸어놓고 취사를 준비하던 가마마을 등 온통 군사용어 일색이라 노리목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마을회관(055-867-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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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9-07-02 09:0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