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동천마을

작성일
2009-07-30
이름
관리자
조회 :
3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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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동천마을 전경

내동천마을 전경

마음 어진 이들이 지키는 명당, '천옥지'
5백살 '당산나무'는 마을 지킴이


산으로 둘러싸여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곡식들이 자라는 들판이 지긋이 내려다 보이는 곳, 명당터 가운데 하나인 천옥지. 삼동면 내동천도 천옥지 형세인 국매산 자락에 자리잡은 명당 마을이다.동천마을 안쪽에 있다하여 내동천이라 부르는 마을. 그러나 주민들은, 본디 동천이란 이름은 자연마을 도림(挑林)과 내동천을 일컫는 이름이라며, "지금의 동천리는 술도가가 있어 '도가머리'라 부르던 곳으로 상가가 형성되면서 중심지로 변모하자 1979년 동천리로 개칭됐다"며 마을 이름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이 마을 전주이씨 종손인 이두원씨가 보존하고 있는 고종 황제 때의 호구단지(개인 호적)에도 주소가 동천(凍川)으로 표기돼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내동천은 숙종때 어떤 사건에 연루돼 아들만 업고 간신히 피신 온 전주 이씨가 처음 들어와 마을을 이루었다. 그로부터 350여년이 지난 지금은 각성바지 58호에 148명의 주민들이 마늘농사, 논 농사를 지으며 터전을 이어간다. 이 마을의 역사를 입증하듯 마을 들머리에 있는 둘레 8m의 거대한 당산나무는 속병이 들어 수술을 받은 몸으로도 "왜놈들이 총 개머리판 만들려고 가지를 베어 말에 메달아 끌고 가다 갑자기 피를 토하고 쓰러져 죽었다"는 내력처럼 신성한 수호신의 모습으로 서 있다.
"가만 앉아 있어도 땀이 삐질삐질 나는 여름에 남자들은 낮잠을 자거나 장기를 두고 아낙들은 삼을 삼으며 넘 숭도 보고 자식 자랑도 하다 해 기우는 것도 모르는 쉼터"가 되는 당산나무. 그루터기에 객지 나간 자식의 전도를 빈 어느 어머니의 정한수 한그릇, 이처럼 당산나무는 주민들이 신성시하는 곳이기도 하다.

물레 돌 베고서 잠자는 아가씨야
니 온제 커서 내색시 될레"
시름에 겨워 삼을 잣던 정금순 할머니가 설운 목소리로 앞소리를 뽑자,
윤옥자, 김두점, 황석순씨가그거는 어렵찮다
오동나무 경대비첩이나 준비해라

뒷소리에 흥을 담아 화답한다.
한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을 나누어 마시며 다툼없이 작은 공동체를 꾸려가는 내동천.
'어기야 디야' 언 땅 뚫고 보리싹 솟아 오르듯 험난한 시절을 묵묵히 인내하는 마음 어진이들이 머지 않아 푸른 싹 돋궈낼 당산나무처럼 동천, 내동천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마을회관(055-867-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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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9-07-02 09:0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