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화마을

작성일
2009-07-30
이름
관리자
조회 :
4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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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마을 전경

삼화마을 전경

삼화마을은 1954년 봉화1리에서 1979년 삼화로 개칭되었으며 삼화마을은 옛부터 삼화동으로 불리어지고 있었는데 이는 갈화(칡넝쿨 꽃), 지화(지화꽃), 연화(연꽃) 세가지 꽃을 칭하여 삼화(三花)라고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어느 명사가 이곳을 지나다가 장골(粧谷)이라고 이름붙이기도 했다. 삼화마을과 금송마을을 연결하는 '메넘어재'는 해발 300m로서 옛부터 산길이 있었으나 1990년 이후 주민통행이 끊긴 옛산고개 재가 되었다. 옛날에는 내산·봉화·삼화마을의 주민들과 학생들이 이 재를 걸어 넘어 지족마을에 있는 면사무소, 시장, 학교(남수중학교, 남해수산고등학교)로 통행했었다.

1970년 무렵, 이 재를 넘는 학생만 100여명이 되었으며 이중에서 많은 인재가 배출되기도 했다. 그리고 지족과 금송마을 주민 일부는 땔감이 부족할 때 이 재를 통해 삼화마을에 와서 땔감을 조달하였고, 또한 삼화마을 주민은 이 고난의 재를 걸어 넘어 지족시장을 통해 경제활동을 하였다. 이 처럼 '메넘어재'는 인근주민들의 억척같은 삶의 역사가 묻어있는 애환의 재이다. 한편, 일제시대에는 이곳에 터널을 뚫어 교통해소를 위한 도로로 활용할 계획을 수립(지적도에 계획도로로 표시)하였던 것으로 보아 인근 주민 통행을 위해 가치 있는 길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1918년 12월에 물건리에서 면사무소가 옮겨와서, 1932년 6월 지족리(현재 면소재지)로 옮겨가기전에 면사무소가 있었던 마을로서 당시엔 교육과 행정의 중심지였다. 삼화마을과 봉화마을 경계인 교량에서 북쪽 500m지점 (현재 제각 있는곳)에는 서당이 있었던 곳으로, 현재도 옛날에는 이곳에서 글공부를 하였다는 나이드신 분들이 있으며, 봉화 광산에 공급되던 전기덕분에 남해에서 제일 먼저 야간에 전기불을 켠 마을이기도 하다. 삼화마을 역시 다른 농촌마을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면서 농사철에는 서로 도우면서 단합하며 항상 밝은 분위기로 살아가고 있다.



●마을회관(055-867-2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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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삼동면행정복지센터 총무팀(☎ 055-860-8151)
최종수정일
2019-07-02 09:0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