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전마을

작성일
2009-08-20
이름
남면
조회 :
3940
  • 죽전4.JPG

'비봉포란' : 알을 품은 봉이 날아 오르는 명당
남해메구의 뿌리는 대밭마을

이름에 걸맞게 대나무 우거진 운치있는 마을이라는 상상을 하며 남면 대밭 마을을 찾았다. 그러나 마을에는 자그만 대밭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또 대밭마을은 풍수지리학상으로 나는 봉이 알을 품은 형상이라는 비봉포란(飛鳳包卵)이다. 봉은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를 않고 반드시 오동나무라야 잠을 잔다. 봉황이 살려면 반드시 대나무, 오동나무가 흔해야 한다. 대나무가 흔치 않고 오동나무가 없는데 어찌하여 비봉포란이요, 대밭이라 했는가. 대밭마을에 처음 들어온 이는 풍수학에 밝았던 청주 한씨 남해 입남조 21세손이었다.

죽전마을전경


사람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남해 곳곳을 다니던 그는 현재의 남명초등학교 자리가 천석꾼을 낼 지형임을 발견했다. 그러나 지형을 자세히 뜯어본 결과 물이 귀할 곳이라 다시 길을 나서다, 산세가 알을 품은 봉황이 날아 오르는 형세인 명당터 대밭마을을 발견하고는 터를 잡았다. 이때부터 마을 이름을 대밭, 동북쪽 골짜기를 오곡이라 하였으며 마을 앞 숲을 봉강림이라 했다고 한다. 지금은 구경조차 힘들게 됐지만 설 명절이면 군내 어딜가나 잡귀 잡신을 몰아내고 풍년 풍어와 만수무강을 빌어주던 메구를 쳤다. 아이들은 땅을 박차고 돌아가는 묘기를 구경하느라 세배도 잊은 채 저녁까지 메구패를 따라 마을을 돌았다. 어른들도 풍물 소리만 울리면 저절로 신명이 솟아 고샅길을 따라 돌곤 했다. 고루 잘살고 모두가 건강하기를 빌어주는 주민들의 공동 신앙이던 메구. 대밭마을 주민들은 '남해 메구의 뿌리는 남면 죽전마을'이라고 자랑한다. 100여년전 풍물 예능 보유자였던 한경수씨가 대밭마을을 찾아와 주민들에게 풍물을 가르쳤다. 농사일을 마친 주민들은 밤에 마을회관 자리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밤이 이슥하도록 가락을 익혔다. 주경야풍하며 우리가락에 몰두하던 대밭마을 메구패는 해방 이듬해 여수 오동도에서 열린 전국 농악경연대회에 나가 오동도를 12바퀴나 도는 12채 가락으로 우수상을 받았다. 또 초기 개천예술제에서도 좋은 성적을 올리며 남해 메구의 위상을 드높였다. 그러나 한점석씨로 이어져 석교마을 김태우씨와 전창기씨에게 전수된 메구는 70년대 들어 이농현상과 함께 대가 끊겨가고 있다. 남면에는 예전부터 공부를 하려면 석교서당이나 대밭마을 서당으로 가라는 말이 있다. 서당을 세우고 서제답을 일구어 후학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던 대밭마을 주민들. 그러기에 명심보감을 줄줄이 꿰는 이 마을 어른들은 후손들에게 도덕과 윤리를 덕목으로 가르친다. 그래서인지 후손들 또한 뿌리가 다 드러나 고사 위기지만 의연한 자태를 흐트리지 않는 비자나무와 마을 이름을 상징하는 대나무처럼 곧은 기개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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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남면행정복지센터 총무팀(☎ 055-860-8251)
최종수정일
2019-07-02 09:0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