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천마을

작성일
2009-08-20
이름
남면
조회 :
4985
  • 가천3.JPG

다랭이 논과 어울린 해안절경은 최고의 예술품
바다와 산, 그리고 문화유산의 조화

가천마을은 항촌마을이나 홍현마을에서 태평양에 가 닿은 망망대해와 깎아지른 절벽이 장관을 이룬 해안도로 구빗길을 돌다보면, 여기도 사람이 살고 있나 싶을 정도로 급격한 경사를 이룬 소울산(망산) 응봉산 골짜기에 옴쏙하니 들어 앉아 있다.가천마을을 답사한 우리문화유산연구소 이형권 소장을 비롯한 문화전문가들은 "민초들의 고단한 삶이 예술로 승화된 계단식 다랭이 논, 억겁의 세월 바닷물에 말끔히 씻겨 눈처럼 새하얘진 바위와 쪽빛 바다가 이룬 풍광이 정말 멋스럽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가천마을전경

"마을 안에 있는 암수바위 또한 보존해야 할 훌륭한 문화자산이라 남해에서는 관광휴양지로 개발해야 할 가치가 놓은 곳"이라고 적극 추천했다.가천마을의 문화자산 가운데 첫번째로 꼽히는 것은 자연과 잘 조화를 이룬 최고의 예술품인 계단식 다랭이 논. 주민들은 바다로 내리 지르는 소울산 응봉산 비탈을 깎아 논을 만들었다. 삿갓을 씌우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논이라 하여 삿갓배미라 부르는 달갱이로부터 봇물이 실한 세마지기 가웃 논까지 100층이 넘는 논배미들이 층계를 이룬 모습은 참말로 장관이다. 천수답이 아니더라도 위에서부터 물을 대야 고루 물을 댈 수 있다는 슬기로 척박한 비탈에 석축을 쌓아 논을 만들고, 그 석축은 한뼘이라도 더 땅을 넓히려는 주민들의 집념으로 안으로 기운 것 없이 바짝 곧추 섰으며 그 석축을 따라 농군의 심성을 닮은 듯 유연한 곡선을 그린 논두렁이 이룬 장관은 한 폭의 그림이다. 영조 27년(1751) 현령이었던 조광징의 꿈에 백발을 휘날리며 한 노인이 나타나 "내가 가천에 묻혀 있는데 우마의 통행이 잦아 일신이 불편해 견디기가 어려우니 나를 일으켜 주면 필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말했다. 현령이 관원을 모아 가천으로 가 꿈에 본 것과 똑 같은 지세가 있어 땅을 파자 남자의 성기를 닮은 형상인 높이 5.8m, 둘레1.5m인 거대한 수바위와 아기를 밴 배부른 여인의 형상인 높이 3.9m, 둘레2.5m인 암바위가 나왔다. 현령은 암바위는 누운 그대로 두고 수바위는 일으켜 세워 미륵불로 봉안하고 제사를 올렸다. 이때부터 주민들은 미륵불이 발견된 음력 10월23일 자정이면 생선이나 육고기 없이 과일만 차려 불교식 제사를 올리며 마을의 안녕을 빌고 있다.
암수바위는 주민들뿐만 아니라 어선들이 고기잡이를 나갈 때 예를 올리는 용왕신이며 불임여성, 병자가족, 입시생을 둔 학부모들이 기도하기 위해 찾는 민간신앙처라고 전한다, 조선시대 남아선호사상이 나은 성기숭배의 대상물에서 바다와 마을의 수호신, 탄압받던 민초들이 해방된 세상을 기원하던 미륵불인 가천 암수바위는 남해의 귀중한 문화자산이다. 아직도 참게가 살고 있는 맑은 개울이 마을을 가로 질러 작은 폭포를 이루는 곳에 태고부터 파도에 씻겨 하얘진 화강암 바위들이 눈부신 가천해안의 절경 또한 그냥 지나치기엔 아까운 장관이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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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면행정복지센터 총무팀(☎ 055-860-8251)
최종수정일
2019-07-02 09:0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