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동마을

작성일
2009-08-14
이름
고현면
조회 :
4575
  • scm17.jpg

탑동마을 전경

탑동마을 전경

★ 마을소개

지명은 지형이나 지세 또는 역사적 산물 등에 의해 붙여지는바, 탑동이란 동명(洞名)은 역사적 산물에 근거를 두고 있다. 신라 경덕왕 때 대사마을에 만덕사(万德寺) 혹은 망덕사(望德寺)라는 절을 승전법사(勝詮法師)가 창건하였으나 화재로 소실되고 탑만이 절 입구에 남아 있는 것을 고종3년(1216)에 원묘국사 요세(圓妙國師了世1163~1245)가 제자 원영(元瑩)과 법안(法安)을 시켜 80여 간을 중창하였다고 도덕원경(道德源經)에 기록하고 있다.
또한 고려사 기록에는 우왕9년(1383) 5월에 해도원수 경렬공 정지장군(鄭地將軍)이 관음포대첩에서 지리산신사에 빌기를“나라의 존망이 이 일거에 있으니 바라건데 나를 도와 신의 부끄러움이 없게 하소서”축문하고 왜구 전선 17척을 화포로 무찔러 승첩함에 정지는 작시(作詩)하기를“내가 일찍이 말(馬)을 몰아 적을 많이 파하였으나 오늘과 같이 쾌(快)한 적이 없었다”라고 스스로 자축하였고 주민들은 기뻐하여 전공 석탑을 관당로변(觀塘路邊) 위쪽에 축조하였으나 훼손 매몰되었다가 돌출(突出)되어 밀려 내려왔던 것을 향인들이 현 중앙 시장입구에 복원하였다.
그래서 탑동이란 지명은 두 가지 설의 복합성을 지니고 있으며, 본 마을은 탑이 있는 마을이기에 자연스럽게 탑동이라 구전되어 오다가 1935년에 대사리에서 분동되면서 공식적으로 탑동(塔洞)이라 부르게 된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마을회관(055-862-4045)

★ 지명
남성방 - 탑동 남서쪽에 있으며, 이곳에 대국산성 전설에 담긴 천장군이 칼을 내리쳐 바위를 갈라놓은 두 쪽의 바위가 있었으나 밭 개간으로 없어졌고, 거북바위만 남아 있다. 관음포 언둑이 생기기 전에는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고 흔적으로 패류껍질들이 있다.
몰랑모 - 탑동 북서쪽 뒤에 있는 마을.
성다물 - 탑동 동쪽에 있는 들로서 옛날 성(城)이 달 모양으로 울을 이루고 있었으며, 임란때 격전이 있었던 곳인바 지금도 개간 때에는 화살이 발굴된다고 한다.
오미자골(음자골) - 탑동 북쪽에 있는 마을.
오미재등(다리비산, 오미재등) - 오미자골에 있는 산.
음자골 - 오미자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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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고현면행정복지센터 총무팀(☎ 055-860-8351)
최종수정일
2019-07-02 09: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