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마을

작성일
2009-08-14
이름
설천면
조회 :
4683
  • 고사마을 전경 (1).jpg
  • 고사마을 해안.jpg
  • DSC_2686.jpg
  • 고사.jpg
박사 4명을 배출한 학문 깊은 마을 가난한 사람 도와주는 인정은 비석으로 남아 설천면에 있는 금음산은 아이를 안으려는 아버지가 팔을 벌린 듯이 좌우로 산자락 두개를 펼쳐 놓았다. 새의 날개 같은 두개의 산자락은 작은 골들에 집들을 품고 소류지 하나와 들을 품에 안고 바다에까지 닿아 있다.이곳이 웃땀, 큰땀, 송등이라 부르는 3개의 땀들에 주민들이 살아가는 고사마을이다. 도선(道詵)의 명인록(名人錄)에 따르면, 이 마을 뒷산에 '고사독서혈(高士讀書穴)'의 명지(名地)가 있다고 하는데서 고사(高士)라 불리웠다고 한다. 그러나 연대는 알수 없지만 공자를 추모해서 사수(泗水) 또는 사천성(泗川城)에서 따와 고사(古泗)라 불리고 있다고 한다. 진목마을의 한땀에 속했으나 박씨가 정착하고 자손이 번창하여 1940년 분동하였다.이 마을 입구에는 비석 2개가 서 있다. 걸인들이 오면 내쫒지 않고 꼭 먹여 재워 보낸 박성관씨의 공덕을 기려 1973년 걸인들이 돈을 모아 비를 세웠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비문이 지워지자 원래의 비는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새 비를 세웠는데, 이것이 '처사 박공성관 공덕비'이다. 다른 하나는 주민들이 10년동안 무보수로 동네 일을 맡아준 박봉준 이장의 노고를 기르기 위하여 세운 공덕비이다. 비석을 지나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느티나무 두 그루가 서 있고 그 밑에는 잘 다듬어진 쉼터가 있다. 이 정자는 옛적에 유난히 선비가 많아 그 선비들이 정자나무 밑에 모여 정담을 나누고 지나가는 길손을 청해 쉬어가게 하던 곳이다. 1995년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박현선씨를 비롯 4명의 박사를 낸 학문탐구가 깊은 고사마을, 걸인이나 가난한 이웃을 배척하지 않았던 인정 많은 고사마을 사람들은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만족도 조사

현재 열람하신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십니까?

평가

담당부서
설천면행정복지센터 총무팀(☎ 055-860-8401)
최종수정일
2019-07-02 09: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