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설화,민담

돔백이 이야기

작성일
2010-07-06
이름
관리자
조회 :
2319
이 이야기는 수산리 박종포씨 조부 전기이다.
하늘 높은 줄은 모르고 땅 넓은 줄만 알고 옆으로만 벌어지고 키가 작달막하여 사람들은
그를‘돔백이’라고 불렀다. 그는‘돔백이’라고 불러도 결코 탓하지 않았다. 주위의 뭇 사람
들에게 호쾌한 성품이 아이 어른 없이‘돔백이’라는 애칭으로 통했다.
가세가 넉넉지 못한 젊은 시절 한때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였는데 주인집에서 비위만 잘
맞추어 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일했다. 머리가 영특하고 기지가 빨라서 남들이
생각지도 않는 새로운 농작업 방법을 창안하여 능률을 올려 주위를 놀라게 하였고 그를 따라
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했다.
농사일이란 조상 대대로 물러 받은 방식 그대로 답습되고 별 생각 없이 남들과 같이 하여
왔는데 그러나 이 사람(돔백이)은 여러 가지 작업 형식을 바꾸었다. 그러기 때문에 작업능률
이나 결과가 월등하여 모두가 그에 의하여 작업형태도 많이 변화했다 한다. 예를 들자면 첫
쓰레질을 종래는 쟁기골에 따라 마치고 두 번 쓰레질은 동쓰레질(가로 쓰레질)로 하고 최종
쓰레질을 처음 것같이 하여 마무리지어 온 것을 이 사람은 첫 쓰레질을 대각선으로 시작하여
재쓰레질을 반대로 바꾸어 하고 최종 마무리를 골대로 하여 농우도 힘을 덜게 하였고 논도
잘 골라졌다. 특히 이모작인 경우 보리 뿌리가 흙 속에 고루 묻혀 보리 짚이 물 위에 떠 밀려
다니는 폐단을 덜게 하였다.
그리고 논보리 갈이인데 오늘날은 농기계가 발달하여 쉽게 파종작업이 되지만, 옛날에는
미리‘쟁기’로 이랑을 떠서 벼릇덩이를 말려서 부드럽게 부수어 다시 이랑을 떠서 보리를
파종했는데 이 흙덩이 깨는 것이 여간 힘들고 고된 작업이다. 이를 돔백이는‘뫼’자루를 짧
게 만들어 두 개를 양손에 잡고 회전시켜 서마지기 논배미를 하루아침에 해치웠다.
그렇게도 일 잘하는 돔백이도 비위 틀리면 심술궂은 장난을 친다. 안주인이 몹시 드세고
어찌나 사나운지 돔백이는 작심하고 산에 나무하러 가서 가시덤불 큰 것만 골라서 덤불채 묶
어 뿌리만 베어서 지고 왔다. 가시가 엉키고 엉켜 손댈 곳이 없는 것을 주인아주머니는 돔백
이 심술이 뻔히 보이는지라 아랑곳 없이 양손에‘메트리’를 끼고 곧잘 탈 없이 불을 때었다.
“ 네가 아무리 해 봐라 내가 끗덕이나 할건가.”
그 안주인에 그 머슴이었다.
“ 쯧쯧 제발 사람 같은 나무 해 오라.”
바깥 어른이 보다 못해 한 말이다. 남들과 같이 솔갈비나 좋은 나무를 해 오라는 뜻이다.
돔백이는 뒷날 온 들판을 쏘다니면서 허수아비만 몽땅 지고 왔다. 주인이 기가 막혀 고함을
쳤다.
“ 이게 무슨 꼬라지냐?”
“ 사람같은 나무 해오라 해서…….”
주인아주머니는 약이 바짝 올라서 생선국을 끓여도 살점 하나 없이 국물만 아침상에 올렸
다. 밥상을 물리고 일하러 갈 채비는 않고 물지게를 챙기느라 야단이다.
“ 어이 박서방 그것 뭐 하려는 건고”
“ 장꼬지 물 길러 갈까 봐요”
고기가 헤엄쳐간 물 길러 간다는 소리다. 돔백이가 마당을 쓸다가 부엌을 바라보니 부엌에
는 청어를 적쇠에 올려 놓고 안주인은 물 길러가고 없었다. 청어는 맛있게 구워져 냄새가 진
동하여 군침을 삼키게 하는지라 냉큼 부엌에 들어가서 청어를 먹고 주인아주머니 돌아오는
것에 때 맞추어 청어머리통은 강아지에 던져주고 딴청을 부렸다.
“ 어랏! 이놈의 개야!사람도 못 먹는 청어를 개가 물고 다니다니~ 응.”
항상 주인어른 밥상은 반찬도 한두 가지가 더 있고 쌀밥이고 식구들 상보다 먼저 차린다.
돔백이 나무지게에 낫 꽂아 만반의 준비를 해 놓고 부엌에 밥상 차리는 눈치 살피다가 밖에
서 선연 동배들끼리 같이 가자고 소리 주고 받는 양 떠들었다.
“ 어이 같이 가세에~ 나 얼른 밥 먹고 갈테 니 기다려 어어.”
소리 지르더니 부엌에 뛰어들어 허겁지겁 주인어른 밥상을 들고 나온다.
“ 아앗! 이게 뭐야! 그 밥상 아니야! 박서방 껏 곧 차려주마!”
“ 엉 뭐! 한 솥에 밥인데 어느 것이면 어때 나 시간 없어요.”
그렇게 능청스럽게 주인 밥상을 들고 나와서 먹어 치웠다고 했다.
하루는 논갈이를 하는데 주인어른이 중참(새참)을 갖고 나와서 돔백이를 칭찬하였다.
“ 어어! 우리 소 오늘 논 많이 갈았다”
논갈이를 많이 했다고 칭찬하는 말이다. 돔백이는 오후에 소 쟁기 채워 세워 놓고(길들인
소는 쟁기 채어서 세워 놓으면 몇 시간이고 되새김질이나 하고 서 있다) 그는 나무그늘 밑에
늘어지게 낮잠 자고 있는데 주인어른이 중참을 갖고 나와 보니 그 꼴이라 어이가 없었다.
“ 여보게! 박서방 이게 무슨 일인가 논일도 안하고.”
“ 뭐요! 아 아니! 이놈의 세가(소가) 아침 절에는 논일을 잘했는데 와(왜) 정 때는(오후) 논
일을 안해!”
자기를 소로 말한 것을 빗대어 한 말이다.
요즘은 지붕이 슬레트나 기와로 덮혀 있지만 옛날의 초가지붕은 매년 이엉(날개)을 엮어
지붕을 갈아 덮는 것이 겨울 준비의 주요 일거리였다. 초가삼간이면 날개 스무장과 용무렴
여덟 발, 새끼 2,300발이 소요되니 행랑몸채 4~5칸쯤 되고 나무베널, 기타 덮을 것 등다 엮
다보면 서마지기 논배미 짚이 다 들어간다.
가을 추수 마치면 밤낮 가리지 않고 틈나는 대로 날개를 엮어야 했고 하루 종일 엮어도 7
장~10장이 고작이다. 추위가 닥치기 전에 연료목 하산시켜 쌓고 지붕이엉 덮는 것이 시급
한 일이다.
돔백이는 겨을 채비는 않고 빈둥거리고만 있어 주인어른이 역정을 내니 하룻밤에 4칸용
이엉을 몽땅 엮어서(워낙 일솜씨가 좋아서) 안방 앞마루에 쌓아두고 말했다.
“ 아~아니! 이 집구석은 아침에 밥도 안 주나?”
날이 밝기를 기다리고 있던 주인 내외는 바깥소리에 문을 열었더니 그 지경이었으니 주인
은 할 말을 잊었다. 여럿이 어울려서 날개를 엮는데 얼른(빨리) 한 장 엮어서 길이가 부족한
것 같아 짚단 두세 개 안에 넣고 말다가 주인이 보고 핀잔을 주었다.
“ 그런 엉터리가 어디에 있어.”
정성껏 제대로 엮어서 발수(길이)가 나오도록 엮지 않는다는 말이다.
“ 아 아니! 지붕에 짚단 올려 줄 사람 어디 있어? 이렇게라도 넣어 두어야지.”
돔백이는 그렇게 받아쳤다.
밀주 단속에 걸려들어 증거물인 밀주 동이를 안주인이 머리에 이고 양조장까지 가게 되었
다. 빚어 놓은 밀주도 빼앗기고 양에 따라 엄청난 벌과금을 물게 되었다. 마침 두엄을 저 나
르든 돔백이가 바지게를 들이대며 자기가 지고 가겠다고 하니 밀주단속 세무 관리는 좋다고
생각되어 짐을 지었다. 돔백이는 짐을 지고는 얼른 따라가질 않고 딴전 피우고 머뭇거리니
그 단속 관리 재촉한다.
“ 빨리 가요.”
돔백이 짐을 밀면서 재촉했다.
“ 어어어! 왜이래! 사람을 밀어!”
돔백이는 밀려 넘어지는 척 비실비실 하다가 짐을 진 채 넘어졌고 밀주 동이는 사정없이
박살났다.
“ 아이쿠야.”
그 관리는 번연히 속은 것이라 분하지만 짐꾼에 손댄 것이 사실이고 물적 증거도 안되고
어쩔 수 없이 허탕을 치고 돌아갔다.
어쩌다가 밥 대신 죽을 끓여 와서
“ 밥이다 셈치고 드시우” 하면,
“ 비온다 셈치고 쉴랍니다.”
그때는 담배도 밀경작해서‘쥐이기’를 쌈지에 넣어갖고 다니면서 피웠다. 담배도 전매품
이라서 취체 관리에 적발되면 벌과금을 물게 된다. 하루는 논일하면서 곰방대로 피었는데
냄새나 연기가 표 난다.
“ 영감. 담배쌈지 이리 내어 놓으시오.”
지나가던 관원이 단속하면 돔백이 성난 얼굴로 빤히 바라보면서 대꾸한다.
“ 야이 이놈의 세상 더러워서… 담배 피우는 것도 간섭 받어… 응에익 내 다시는 담배 안
피울란다!”
그냥 담배쌈지와 곰방대를 진흙탕에다 밟아 넣어 버렸으니 단속 관원도 어쩔 수 없었다.
때는 일제가 최후 발악하던 시대라서 얼핏하면‘다 되어가는 세상’이라는 반일적 언사가 유
행하던 시대였다. 사람들은 무심코 이런 소리가 입에서 자주 튀어나온다. 고등계 형사들은
유언비어나 유행하는 반일적 말들을 극도로 경계하여 걸려들면 톡톡히 경을 치고 심하면 보
국대에 끌려간다.
돔백이는 무심코 지꺼린 것이‘다 되어가는 세상’했다가 덜컥 덜미가 잡혔다.
“ 여보시오 내 나이 80이라. 살면 얼마나 살고 내일 죽을지 오늘 죽을지 모르는 것이 내 세
상 아이가.”
하면서 신세 한탄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