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군의 용마발자국 바위

작성일
2010-07-06
이름
관리자
조회 :
1150
속담에“닭이 천이면 봉이 나오고 말이 천이면 용마가 나온다”는 말이 있다. 수가 많으면
인물이 생긴다는 뜻이다. 창선에 목장을 개설한 이래 임진왜란 때가 최성기였다. 그때 많은
말 속에서 한 말이 어찌나 성질이 사납고 날쌘지 근접하는 병졸이 없다는 소문을 듣고 진주
에 주둔하고 있던 김덕령(金德齡 1567~1596)장군이 몸소 목장까지 왔다.
김덕령 장군은 상신 뒷산의 고동바위에서 용마를 잡아타고 내려왔다고 하는데 그 용마의
발자국이 고동바위에 남아 있고 상신 돌다리에도 같은 발자국이 남아 전해져 오다가 정사년
(1917) 홍수에 유실 매몰되었다는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용마가 어찌나 날쌔고 영특한지 김장군은 이 용마를 타고 혁혁한 전공을 세웠고 그 뒤 장
군이 무고로 옥에 갇힐 때마다 용마는 미리 알고 아무 것도 먹지 않아 김장군은 무고 당함을
미리 알았다. 이몽학의 모반에 연루되었다는 무고에 장군을 바라보면서 눈물까지 흘리기에
장군은 화를 당할 것을 각오했고 끝내 풀려나지 못하고 고문으로 죽게 되자 용마도 마침내
굶어 죽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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